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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리얼리즘에 근거하여 민중적 입장으로 밝혀보는 가사쓰기 해설입니다. 하여 순수예술론 이랄지 아니면 이론 자체도 없는 자본주의적 순환구조식 예술창작의 시각과는 확연히 다름을 밝힙니다.>

노래를 잘 만들려면 먼저 가사를 잘 써야 합니다
                                           박종화
먼저 실제적인 작곡과정으로서 가사를 창작하는 기본적인 이론의 토대와 방도를 알아보도록 하고 실제연습의 과정을 거치도록 하겠습니다.
가사라고 하는 것은 시와는 약간의 차이점들이 있습니다. 그 것은 시가 갖는 자율성이 가사에는 적다는 것입니다. 가사는 가사로서의 한계를 분명하게 갖고 있는 것인 만큼 무리한 욕심을 내어서 자기가 요구하고자 하는 내용을 한꺼번에 담으려 하지는 말아야 하겠습니다.
가사라고 하는 것은 노래의 사상예술적 내용을 표현하는 수단이요 노래를 받쳐주는 강력한 무기로 됩니다.

노래 작곡에 있어 가사는 선결요건이 되며 노래의 사상예술적 기초가 됩니다. 노래에 대한 작곡가의 풍부한 정서와 예술적 형상을 최대한 살려내기 위해서는 먼저 가사에 자신이 갖는 사상적 함축을 담아내야 하며 간결하게 표현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때문에 노래에 있어서 가사는 대중으로 하여금 중요한 인식 교양적 의의를 갖게 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어떠한 노래도 예술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문학성이 전제 되어야 합니다. 노래가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가사가 갖는 규칙적인 운율이나 함축성 있는 단어들을 새롭게 사용하여 창작의 품위를 한껏 높이는 역할을 담당해야 될 것입니다. 때문에 노래를 만들 때 가사는 작곡가의 창작 의도나 창작 열정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노래를 만들 때 곡을 먼저 만들고 가사를 붙이는 것은 작곡에 한해서는 뜻 깊은 의의를 주지 못합니다. 내용도 알지 못하고 형상화를 먼저 시킨다는 것은 자신 스스로가 관념화의 수렁으로 빠져 들어가는 계기가 될 수 있으며 노래를 형식적 틀에 짜깁기 하는 것으로도 될 수가 있게 됩니다. 때문에 노래를 만듦에 있어 가사를 먼저 정리하는 것은 선결적 요건으로 나선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사가 좋아야 선율이 좋게 됩니다. 가사가 나쁘면 창작자 스스로가 혁명적 열정으로 매어 달려 작업을 하기도 힘들게 되며 그 가사에 맞는 선율에 안간 힘을 써도 좋은 노래가 될 확률은 그리 높지 않습니다.
작곡가의 음악적 정서나 개성을 반영하게 되는 가사는 곡의 양식을 규제하는 것으로 됩니다. 다시 말하면 곡의 색깔이나 음조 등의 형식과 곡의 전체적인 운율을 규정한다는 것입니다. 그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올바로 인식하지 못하고 곡을 먼저 쓰게 되고 나중에 가사를 붙이게 된다면 (많이들 그렇게 창작하기도 함) 내용이 없는 형상을 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는 올바른 사상적 알맹이를 담보했다고 볼 수 없습니다.
좋은 가사가 있어야 만이 창작자 자신이 “아! 이 것은 좋은 노래를 만들 수 있겠구나” 하는 관심이  높아지고  혁명적 열정으로 다가서게 되며 가사에 맞는 선율을 설정하여 곡 전체에 흐르는 분위기에 따라 노래 전반의 선율 색깔을 조정할 수 있습니다. 그 것이 바로 가사가 선율을 규제하는 요인으로 된다는 것의 의미입니다. 좋은 가사는 창작자의 체험에 의해 진실성 있는 시대정신에 입각하여 사상 정신적인 작가의 감정이 표현되는 것으로서 시적 언어로 형상화 되는 것이며 선율작업의 기초로 나서게 됩니다. 이러한 가사가 작곡가의 사상적 공감과 정서적 감흥을 동반하여 급기야 노래로 형상화 됩니다.
가사는 짧은 몇 토막으로 규정됩니다. 때문에 대중들의 정서를 가장 정확하게 반영한 단어들을 찾아내어 간결하게 운율화시켜 표현을 해야 합니다. 짧으나 내용의 함축성은 크고 간결하여 대중이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가사가 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노래 중에서 가사는 작품의 내용과 감정을 가장 직접적으로 전달해 주며 말하고자 하는 노래형식을 선명하게 표현합니다. 그 만큼 가사는 내용면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가사를 쓸 때에는 먼저 막연한 기분을 버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막연한 감정으로 가사를 아무 것이나 생각나는 대로 써야겠다고 생각하게 되면 오히려 작품도 쓸 수가 없게 됩니다. 이러한 창작태도는 버려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자세가 필요하겠습니까?
무엇보다 먼저 자신의 생활과 함께 사고하면서 무엇을 쓸 것인가를 끊임없이 사색하는 자세를 잃지 않아야겠습니다. 항시적으로 “무엇을 쓸 것인가!” 하는 목적의식성을 갖고 있어야만이 “무엇을 써야겠다.” 라고 하는 구체적인 내용이 자신의 것으로 달려들게 됩니다.
사실 필자 자신이 이에 대한 깊은 고민이 없었기에 더욱 절실히 느끼는 문제가 되었습니다. 노래를 작곡함에 있어 주제를 설정하여 그 한가지에만 매달리는 작곡형식이 필자의 작곡생활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때문에 현재 실질적으로 일어나는 생활의 관건적인 문제는 올바른 시대정신을 반영하지 못한 채로 작업에 임하였던 때가 많게 되었습니다. 그런 노래는 유능한 작곡가들이 많으니까 그들에게 맡긴다는 생각으로 자신을 합리화 하고  오직 하나의 주제에만 매달리는 창작투쟁을 전개하다 보니 시대정신에 입각한 구체적인 창작고민을 못하게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생활 속에서나 투쟁 속에서 불리워지는 대중적인 노래들을 훌륭하게 작곡해 내지 못한 오류를 범하게 된 것입니다. 그 나마 그러한 오류들을 학습과 사색을 통해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이 큰 기쁨이 되었습니다.

가사는 자신이 생활하고 있는 투쟁의 현장에서 요구 되어지는 정서를 온전히 반영시켜야 합니다. 이런 현장에서 가사를 뽑는다는 것은 구체적인 민중의 삶을 매개로 하여 가사를 쓴다는 것입니다. 현 시점에서 이랜드 투쟁이 가열차게 진행되고 있으니까 이랜드의 단결가를 만들어야겠다 하여 책상머리에 틀어박혀 글을 쓰게 되면 구체적인 이랜드의 위상과 그들의 실생활을 담보하지 못하는 관념적인 가사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 투쟁을 담당하고 있는 이들과 함께 이야기 하고 듣고 그들 생활 속에서 체험하고 난 연후에 가사를 뽑아내면 훨씬 좋게 될 것입니다. 총궐기 투쟁의 위업을 달성한 노동전사들을 노래하기 위해 글을 썼다고 합시다. 그래서 가사의 구절 첫 마디가 “저 당당한 투사의 모습을 보아라!”로 시작했다 합시다. TV를 통해 탄압받는 몇 커트를 보고 실제 싸움의 동참은 커녕 본 것 조차 제대로 없으면서 그렇게 쓰게 된다면 그 가사의 절박성이 잘 살아나지 않게 되며 작가의 양심적인 문제로도 됩니다. 그럴 때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그 투쟁의 주위에 있었거나 직접 참가했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어 더 좋은 소재와 종자들을 골라 내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가사는 선율을 규제하는 것인 만큼 그야말로 실천 현장과 결부되지 않으면 안되겠습니다. 또한 가사는 대중의 감정에 가장 직접적으로 파고드는 근본요인으로 됩니다. 반주만이 흐르는 몇몇 공연장에서 힘있게 대중들이 가사를 따라 부르는 것은 가사의 내용이 노래에 있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가를 말해주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때문에 항상 가사를 먼저 쓰고 선율을 나중에 붙이는 습관을 길러야 하겠습니다. 그렇지 않고 곡을 먼저 붙이고 나중에 가사를 붙이게 되면 노래가 올바로 형상화 될 수 없거나 잘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이러한 창작방법들은 대체적으로 순수기악을 전공한 창작자들이 자주 쓰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나는 악기도 잘 다루고 이론도 잘 아는데 왜 민중가요를 잘 못만들까? 그 것은 아마 가사를 잘 쓰지 못하기 때문일 거야.” 하는 생각을 했다면 피아노고 이론이고 다 집어치우고 오직 가사 쓰는 일에 몰두할 일이지 계속해서 선율을 먼저 창작하게 되면 결코 좋은 노래를 만들기는 힘들게 될 것입니다. 이런 창작방식에서는 좋은 성과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뻔한 이치입니다. 노래의 절절한 정서는 가사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무엇을 표현할 것인가’ 하는 개략적인 정서의 표현만으로 노래를 작곡하고 가사는 쓰지 않게 되니 처음부터 끝까지 한음 한음 창작자의 열정을 쏟아붓기 힘들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선율을 먼저 창작하고 나중에 가사를 쓴다거나 다른 시인의 시를 깊은 고민없이 미리 내 온 선율에 적당히 붙이게 되면 노래도 좋지 않게 될 뿐 아니라 시 자체도 살아나지 못하게 됩니다. 좋은 가사에는 작곡가나 창작자의 높은 정치사상이 드러나 보입니다. 혁명적인 동지관, 애국에 투철한 창작자의 의연함, 타협함이 없는 자신의 계급적 입장 등 이런 여러 가지의 자신의 정치사상성이 하나의 소재를 통하여 발현되어 지는 겁니다.

작가의 정치사상성이 좋은 가사의 징표가 되는 것은 가사창작의 근본목적과 깊은 관련이 있게 됩니다. 민중을 위한 작곡가는 민중의 요구에 대한 예술성을 파악하여 투쟁에 끝없는 신심을 불어 넣어야 할 과제를 안고서 가사를 쓰기 때문에 작곡가 자신의 기량이 정치사상성과 수준 높게 결합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좋은 가사는 작가의 높은 정치사상성 못지않게 높은 예술성을 담보 받아야 합니다. 아무리 작가의 정치 사상성이 높이 구현되었다고 하더라도 예술적 형상화가 부족하게 되면 작가의 정치 사상성을 올바르게 대중에게 전달할 수가 없게 됩니다. 간결하게 가사를 정리하고 천박하거나 난잡하지 않게 정형화 하는 것은 높은 예술성이 있어야 가능할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고 예술성이 뒤떨어지게 되면 가사 자체가 전기문식 내지는 내용만을 전달하는 산문식이 되어 버리고 선율적 형상화를 시키는데 많은 문제를 노정하게 될 것은 물론입니다. 예술성과 정치사상성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가사는 혁신적인 내용을 반드시 담아내게 됩니다. 그 것은 민중의 아름다운 생활과 정신세계를 표현하는 목적지향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요구이기 때문입니다. 민중이 주인되는 삶에서 돋아나고 투쟁에 복무하는 노래는 민중의 지향성이며 요구인 것입니다. 좋은 노래는 혁명성을 반드시 담보하며 높은 정치사상성으로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가사에서 행복한 생활만 강조하는 것은 낙관적 신심과 아무런 인연도 없습니다. 진정한 민중들의 낙관적 신심은 고난에 찬 투쟁의 노정 속에서도 항상 승리에 대한 낙관성을 지키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너무 단편적으로 행복한 생활만을 강조한다는 것은 제국주의 문화적 본성인 허무주의나 향락주의만 조장하게 되기도 합니다. 우리노래의 가사는 행복한 미래사회에 대한 투쟁의 설정과 계급적 사상을 지향하는 가사로 되어야 합니다. 또한 지난날 우리 역사 속에서 결코 잊을 수 없었던 고난과 설움은 두 번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상기시키며 민중에게 좋은 일은 많이 생겨나도록 더욱 부채질하는 그런 가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가사가 미래조국을 건설하는데 힘을 주는 가사인가를 알아보겠습니다. 만일 자연을 노래한다고 했을 때 자연을 보며 민중들의 한없는 낭만을 서정적으로 표현하게 된다면 그 것은 자연의 본질을 옳게 파악하였다고 볼 수가 없는 문제입니다. 그 보다 자연의 본질은 자연에 맞서 이를 가꾸고 사람의 삶을 위해 일구어온 사람들의 노동생활과 투쟁의 역사에 대한 긍지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사람이 자연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아름다워서만이 아니라 인류 대대로 가꾸어 온 자신의 보람과 긍지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문학의 진정한 가치는 철저하게 현실을 반영해야 하는 것으로부터 우러나오게 됩니다. 또한 진실한 인간 문제나 투쟁의 문제들을 민중들의 지향과 요구에 맞게 재현하는데 있으며 노동계급적 인간을 철저히 반영하는데 있다고 하겠습니다. 노동계급적 입장을 가지고 민중이 나가야 할 방향을 노래에 반영한다고 해서 무조건 주입식으로 노래를 만들거나 보급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노래는 대중 스스로가 거부하게 되며 역할 자체를 수행할 능력을 상실하게 될 것입니다.

높은 예술성은 좋은 가사의 큰 특징 중 하나로 됩니다. 여기서 예술성이라 함은 미사여구를 현란하게 늘어놓아 대중의 정서를 혼미하게 한다는 것과는 관련이 없으며 고도의 함축성과 정밀성 등을 뜻합니다.
가사에는 시적인 운율과 내용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 할지라도 사건을 있는 그대로 나열해 놓는다면 단지 그 것을 설명하는 해설이 되어 가사로는 적당하지 못하게 됩니다. 가사가 갖추어야 할 조건은 적당한 운율이 있어야 하며 선율과 자연스런 조화를 이루어 내는 것도 중요한 것으로 됩니다. 운율만을 앞세워 올바르게 내용을 담아내지 못하는 것도 경계해야 하며 운율과 내용이 유연성 있게 통일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사의 진정한 예술적 가치는 생활로부터 우러나오는 민중적인 체험을 시적으로 형상화  할 때에 비로소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작가의 사상성이 민주적인 토양을 바탕으로 하여 아름답게 형상화 될 수 있는 리듬을 갖추게 된다면 그 보다 더 좋은 가사가 없을 것입니다.
가사가 지니는 높은 예술성은 좋은 가사의 고유한 특성중의 하나로 되겠습니다. 아무리 작가의 뛰어난 체험이 사상적으로 결합했다고 하나 예술적 형상미를 갖추지 못하게 되면 좋은 가사로 될 수가 없게 됩니다. 가사를 쓰다 보면 참신한 줄거리나 핵심을 잡아낼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같이 참신한 내용을 뽑아내고도 올바르게 정형화 시키지 못하고 예술적으로 형상화 시키지 못하게 될 때에는 뭔가 빠진 듯한 허전한 느낌이 들게 됩니다. 좋은 가사를 만들 수 있는 종자를 올바로 틀어쥐었음에도 불구하고 놓쳐버리는 안타까운 경우가 될 것입니다. 이러한 오류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부단히 연습하고 가사가 갖는 몇 가지의 특성을 빠른 시일 내에 익히고 연습하여 매끄러운 가사를 만들어 낼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가사가 갖는 중요한 특성 중에서는 작가가 갖는 사상성 뿐 아니라 예술성을 빼 놓을 수 없게 됩니다. 그 만큼 예술성은 가사의 특성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여기서 가사의 예술성이라고 하는 것은 과장되거나 호화스런 미사여구를 다양하게 써 내려간다거나 쓸데없는 군더더기식의 가사나 해설식의 덧붙임을 가미한다고 하는 것과는 아무런 인연이 없습니다. 예술성이라고 하는 것은 전반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줄거리를 고도의 함축성을 발휘하여 압축시켜 내고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정밀성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하나 예술성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시적 운율이 갖는 율동성입니다. 함축성 있고 정밀하게 뽑아 낸 가사 구절구절에 율동성이 없게 되면 민중의 항구적인 생명력을 보장받지 못하게 됩니다. 곡 자체는 별로 좋은 것 같지 않으나 가사의 운율성이 갖는 통속성으로 인해 대중에게 많이 불리는 것은 좋은 실례라 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함축성에 관련한 문제입니다. 한 마디의 단어들이라도 함축성을 지니는 것은 좋은 노래의 조건이 됩니다. 대중들에게 공감을 받을 수 있는 함축성  있는 단어들이 섬세하게 묘사된다면 그 것은 좋은 가사의 극치가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보게 되면 여러 노래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반제 자주의 깃발을 들고 노동계급의 선봉으로 싸웠던 유격전사들의 투쟁을 형상화 하는 노래가 있다고 합시다. 그런 노래는 역사음악의 형상화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역사음악의 형상화는 시대정신에 민감한 현실표현의 노래와는 많은 차이가 있으며 특히나 경험하지 못한 역사적 관념을 극복해야 할 난관이 있게 됩니다. 그러는 만큼 더 더욱 실감있는 단어와 함축성 있는 단어를 사용해야 하는 절박성의 실체가 높이 제기됩니다. <지리산>은 바로 그와 같은 역사적 사건을 형상화 한 노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노래는 기존의 역사음악이 갖는 관념성을 극복하고자 많은 노력을 하여 만들어 본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역시 많은 한계를 드러낸 것 또한 사실입니다. 이 노래를 형상화 시키는 과정 중에서 가장 먼저 떠올랐던 참신한 내용은 책을 통해서 얻어지게 되었습니다. 빨치산 소설을 읽으면서 빨치산 전사들의 처절한 삶의 과정이 적나라하게 가슴속으로 들이차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눈을 감으면 그 때의 아우성 소리와 쓰러져가는 몸짓과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는 생활의 전반이 머릿속에 그려지게 되곤 하였습니다. 그러한 환상 속에서 콩 볶는 듯한 총소리와 쓰러져 가는 동지들의 신음소리, 죽을지라도 결코 비굴하지 말자던 의연한 용사들의 기개, 목욕 한 번 하지 못해서 몸 안에 수 없이 기어다니는 벌레와 겨드랑이나 사타구니 사이에서 마음껏 살갗을 유린하는 뚝니의 사각거리는 소리 등이 온통 가슴으로 살아오는 것이었습니다.
이렇듯 수없이 많은 그 때의 소리들을 표현해 내기에는 노래가 너무 짧음을 느끼면서 ‘이 모든 소리들을 한꺼번에 담을 수 없겠는가’ 계속해서 고민하고 별의 별 단어들을 다 생각해 본 결과 그러한 모든 소리를 ‘빨치산소리’라고 표현하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리산>에서 주는 감흥적 정서와 여운을 남기게 되는 중요한 구절로 “빨치산소리”가 핵심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좋은 노래를 만들고자 할 때에는 하나의 단어를 선택하는 것도 중요한 일로 나서게 됩니다. 이런 저런 단어 중에서 적당한 것을 고르는 방법은 좋은 가사를 쓸 수 없게 합니다. 똑같은 물질을 가리키는 단어는 부지기수로 많습니다. 여러 단어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될 때에는 참신하고 새로운 단어를 선택해야 하며 가사에서 자주 반복되는 단어는 똑같은 의미를 주는 다른 단어를 선택하는 것이 하나의 요령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걸러진 단어들이 모아져서 시적 형상을 나타내게 되면 좋은 가사로 됩니다. 가사가 산문처럼 되면 노래 자체가 산문처럼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것은 선율이라고 하는 것이 가사의 규제를 받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좋은 선율을 잡기 곤란하게 됩니다.

가사를 정형화 하고 시적 운율화를 시킨다는 것은 작가가 갖는 혁명적 열정을 함축시킨다는 말과 같습니다. 직선적이고 직시법적인 틀을 관성화시켜 계속해서 사용하게 된다면 발전은 바라볼 수 없게 되며 운율이나 글귀조차 적재적소에 배치할 할 수 없게 됩니다. 작가의 체험에서 흐르는 살아있는 정서들이 함축성 있게 표현되는 것은 좋은 가사의 생명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못하고 계속해서 해설 형식으로 되면 대중들에게 지루함을 주게 되며 선율을 올바로 형상화시키기 어렵게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가사를 쓰는 작가의 태도는 혁명적 열정으로 매사에 들끓어 있어야 하며 건강한 육신을 보존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 됩니다.
창작하는 작업은 뼈와 살을 깎는 자신과의 투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쎄일즈 맨의 경우와도 유사점이 있습니다. 자신의 상품을 많이 팔기 위해 내적으로는 쉼 없이 연구하면서도 밖에서 사람을 만나게 되면 질긴 인내력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게 해야 합니다. 결국 자신의 물건을 사게 할 때까지 상대방과의 싸움 못지않게 부단한 자기와의 싸움을 하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각각 상이한 성격과 개성을 지닌 수많은 대중들을 매일 만나 자신의 물건을 판다는 것은 강한 자신의 내적 무장과 아울러 또 하나의 자신과의 싸움을 처절히 전개해야만 하기 때문이겠지요.
작곡가 역시 이와 마찬가지로 됩니다. 누구하나도 자신의 작곡에 대하여 책임을 져 주지는 않습니다. 작곡은 작곡가 자신이 주인 되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몸 자체가 쉬지 않고 적을 수 있는 필기도구가 되어야 하며 부단한 사색과 발로 움직이는 실천적인 작업이 중단 없이 따라 다녀야 합니다. 이와 같은 제반 일들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튼튼한 육신이 보장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모든 사람이 마찬가지 듯이 한 가지 일에 몰두하게 되면 자신의 건강을 돌볼 겨를이 없게 되는 일이 허다하게 많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 일수록 자신의 건강을 돌보아야만 일을 더 성과적으로 진행시킨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하겠습니다. 이렇듯 건강한 육신을 지켜가는 작가들이야 말로 매사 사물을 바라보는 통찰력을 견고하게 유지할 수 있으며 또한 그런 통찰력을 발전시키려는 실천적인 노력에 박차를 가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을 것입니다.
가사를 쓰는 작곡가들은 무엇보다 가사의 정형화에 예술성을 부여하는 일을 놓쳐서는 안된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가사에 예술성을 부여한다는 것은 가사를 시화 한다는 것이 기본으로 됩니다. 가사를 시화 한다는 말은 정치적 표현이나 단어를 은유적인 다른 말로 표현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잘못 사고하여 항상 온유하고 부드러운 단어들만 찾아다니는 것이 가사를 시화 시키는 요인이라 생각하게 되면 해방투쟁에 옳게 복무하는 가사를 쓸 수 없게 됩니다. 따라서 시적 운율을 형상화 시키는 문제와 정치적 표현의 문제를 통일적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정치적 사고를 떠난 생활이란 있을 수도 없으며 정치적 생명이 보장되지 않는 투쟁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 만큼 투쟁에 있어 정치적인 현실은 중요합니다. 때문에 해방투쟁에 복무하는 노래에는 작가의 높은 정치사상성이 형상화 되는 것은 물론입니다. 이런 노래를 만들게 될 때 자칫하면 추상적으로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자신의 높은 정치적 식견이나 정치적 입장을 논리적으로 노래에 담으려는 과장된 욕심을 부리게 되면 노래가 추상적으로 될 가능성이 있게 됩니다. 이 것을 모면하기 위해서는 대중 일반이 가장 쉽고 용이하게 받아들이거나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하나의 소재를 선택하는 것도 추상성을 탈피하는 요인이 됩니다. 어차피 정치적 입장이 다른 사람은 그런 상반된 입장을 표현한 노래에 정을 주지 않기 때문에 구체성을 띠며 상징성을 주는 단어사용에 주저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 것은 그런 생각을 지닌 대중만을 위해 노래를 만들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다양한 자신의 작곡활동이 필요한 것입니다. 자신과 정치적 입장이 다르다 해도 해방투쟁에 복무하는 이상 모두가 동지적 관계로서의 틀을 깨는 일은 삼가야 하겠습니다. 상대방이 갖는 또한 작가가 갖는 정치적 입장에 대한 예술적 형상화에 대해 서로 이야기 하는 것이 현명한 일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정치적 입장이 작곡에 있어서도 중요한 일로 나서게 되는 만큼 적절한 자신의 의지와 태도와 관점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며 이를 구체화 시키는 작업 또한 작곡에 있어 중요한 사상적 임무로 나서게 됩니다.

다음은 가사에 있어서 서정성의 문제를 보기로 합시다.
좋은 가사가 되어 대중의 심금을 울리게 되려면 매사 서정성을 확고히 보장 받아야 하겠습니다. 서정성이라고 해서 반드시 조용한 노래 속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전투적인 노래에도 서정성을 담보할 수 있으며 이러한 서정성은 좋은 노래로 되는 중요한 관건으로 나서게 됩니다. 서정성을 잘 살리자면 작품의 종자를 잘 피워내야만 효과적으로 될 수 있습니다. 달을 쳐다보고 있다고 가정합시다. 달을 보며 자신의 처지와 민중의 입장을 잘 표현할 수 있는 구체적인 내용은 각기 작가의 개성에 따라 다르게 됩니다. 여기서 좋은 가사를 뽑아낼 수 있는 지름길은 저 달 속에 어떻게 현실에 처한 자신과 민중의 입장을 바르게 연결시킬 것인가 하는 내용의 가닥을 잡기 위해 인내력 깊은 노력을 마다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한 노력은 좋은 작품을 내오는 요건으로 되며 작가의 높은 열정과 감정에서 우러나오는 서정성을 옳게 발휘할 수 있는 전제조건으로 나섭니다.
가사가 직설적으로 되어서 서정성을 담보 받지 못하게 된다고 하는 것은 작가가 사물을 깊이 있게 고찰하고 현상의 본질을 명확하게 파악하지 못한데서 기인합니다. 서정성이란 자연만을 찬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순수한 사랑만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계급적 관점 없이 순수한 입장으로 모두를 대변하는 작업이 아니란 말과도 같습니다. 높은 정치사상성을 체험한 우리시대 인간들의 숭고한 정신세계와 투쟁정신의 면모를 담아내는 것이야 말로 가장 옳게 서정성을 담보하는 것입니다. 그 것은 혁명적 서정성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가사에는 여러 형태의 종류가 존재하게 됩니다. 가사가 깊은 여운을 주면서 노래는 끝났는데도 뭔가 있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을 받는 노래, 한꺼번에 감정을 폭발시켜 버려서 대중으로 하여금 후련한 기분을 만끽하게 하는 노래, 자연스럽게 흥얼거리면서 대중의 흥을 돋구어 주는 노래, 또는 우아한 품위를 지켜줌으로서 섬세한 민중적 정서를 표현하는 노래, 아니면 전투적인 구호로서 오직 전진하는 대동단결만이 살길임을 분명히 밝히는 노래 등등 그 종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물론 이러한 분류들은 선율을 사고하지 않고 가사만 고려한 것이지만 이런 종류의 가사들이 다 좋은 노래로 될 수는 있습니다. 다만 얼마나 가사를 시화 시키고 예술적으로 형상화를 잘 시켜 내느냐가 관건일 뿐입니다. 때문에 어떤 형태의 노래 가사를 쓰려하든지 간에 열정을 가지고 끝까지 달라붙어 이악스럽게 실천해 나가도록  노력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추상적인 관점을 극복하고 역사적 전개를 장엄하고 품위있게 다루고 대중에게 부담없이 자연스럽게 접근하는 노래들은 모두가 생활적인 작가의 정서에서 비롯됨을 안다면 작가의 실천적인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것입니다. 진정한 예술적인 형상의 가치는 여러 가지 모든 문제를 나열하는 것으로 절대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이는 오히려 하나의 문제조차 제대로 승화시켜 낼 수 없게 되어버리는 결과를 낳기도 합니다. 하나의 물체를 다양한 소재와 요소들로 결합시켜 한 가지로 집중시키는 형상화에 노력하는 것이 좋은 노래 작사의 지름길로 되겠습니다.

형상의 집약화는 한 가지 내용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것으로 해결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내용 전체를 천박하게 하며 대중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중심적 내용에 대해 대중들이 지루하게 생각하거나 역겹게 사고하는 악영향을 끼치게 되기도 합니다. 좋은 가사는 간결해야 하는 조건이 있습니다. 간결한 가사를 내올려고 한다면 작가는 사상의 핵을 틀어쥐고 핵심을 똑바로 세워야 하겠습니다. 무조건 축약 축소시키는 것은 가사의 간결성과 인연이 없습니다. 간결한 내용의 가사지만 긴 가사의 내용보다 훨씬 더 풍부한 정서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 여기서 말하는 간결성입니다. 노래 하나하나 구절구절 모두가 사상을 이야기 하고 있으며 투쟁을 이야기 하고 있다는 것은 다양한 대중의 정서에 간결한 가사로 파고들어 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시어나 가사라 할지라도 적재적소에 배치하지 못하면 좋은 곡이 될 수 있는 조건을 상실합니다. 똑같은 가사 내용으로 똑같은 의미를 전달한다고 할지라도 가사의 순서에 따라 대중의 감흥정도가 전혀 다른 각도로 변화하게 되기도 합니다. 자기자리에 가사를 잘 배치한다는 것은 대중의 정서 속에서 쉽게 와 닿을 수 있도록 배열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말을 잘 알고 옳게 사용할 줄 알아야합니다. 외국어를 공부하는 사람이 외국어를 잘 하려면 능숙하게 우리말로 번역해 낼 수 있도록 우리말의 특성을 잘 알아야 합니다. 우리말 학습에 게을리 하지 말고 시간이 있는대로 습작하는 노력을 놓지 않는 것도 좋은 가사를 쓰는 중요한 관건으로 됩니다.

시 중에서도 서정시는 가사와 근본적인 차이는 있다고 하나 유사성을 갖는 요소 또한 많습니다. 서정시와 가사의 근본적이 차이를 말할 때 서정시는 읊고 읽는 것이라 한다면 가사는 부르는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가사는 시어를 부르기 좋은 것으로 잘 골라야 할 뿐만 아니라 특히나 운율을 잘 조성해야 하겠습니다. 글에 곡을 붙이지 않아도 글 자체만으로 벌써 음악처럼 감미할 수 있는 아름다움과 독특한 형식미를 가지게 되는 것은 가사가 갖는 일반적 특성으로 됩니다. 예를 들어 ‘밖이 요란하다’의 표현은 시에서는 별 무리가 없어 보일 것 같은데 가사에서는 ‘요란타’와 ‘요란하다’가 주는 감흥적 정서는 가사전체가 주는 느낌에 의해 큰 차이를 보이며 나타납니다. 물론 시에서도 운율상의 차이는 있게 됩니다. 그러나 가사에서처럼 현격한 차이를 갖지는 않습니다.
가사는 음향소리를 특히나 강조해야 하고 내용 전체의 표현 등은 시에서처럼 다양하게 표현하기 힘드니까 간결하게 표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음수율을 보장받지 못하게 되며 서술적 단어나 문장에 있어서도 막힌 듯한 인상을 주게 됩니다. 흔들리고 있는 상태를 표현하고 싶다면 실제로 흔들리고 있다는 기분을 줄 수 있는 형상화가 필요하며 소리가 들리는 것을 표현하려면 실제 들려오고 있는 듯한 착각을 갖게 할 정도로 표현하는 함축성 있는 시어가 필요하게 됩니다. 하나의 음정에 두 개의 가사를 넣는 것은 가급적 피하고(특수한 경우나 운율에 효과를 줄 수 있는 경우 제외) 지나치게 하나의 소절에 많은 가사를 집어넣는 것을 경계해야 하겠습니다.
가사에 운율을 살린다는 것은 마디마디 사이에 끊어지는 듯한 기분을 제거한다는 것과 같습니다. 운율을 살린다고 하여 간결하게 3,4 4,4 4,5조 등의 형식을 빌어쓰다가 오히려 함축성 있고 진지하지 못한 가사를 짜 맞추게 될 경우는 딱딱 끊어지는 듯한 느낌을 주게 되어  단조롭거나 까다롭게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운율을 잘 살리는 문제는 이런 문제를 피하고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듯한 느낌을 주며 전반적 분위기를 유연성 있게 살리고 충분한 여운을 남길 수 있는 문제와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누구나 알기 쉽고 배우기 쉬운 가사는 좋은 노래가사의 필수 조건으로 나섭니다. 가사 자체가 상징성을 빙자하여 너무 어려울 때면 구체성을 띠지 못하여 쉽게 대중에게 접근하지 못할 뿐 더러 대중이 따라 부르기 힘들게 됩니다. 대중성 있는 가사란 누구에게나 공감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뜻과 내용을 함축시킨 가사라는 말과 같습니다. 그렇다고 쉬운 가사라고 하여 쉬운 단어만을 사용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깊은 뜻을 쉬운 말과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내용으로 하라는 말입니다. 따라 배우기 쉬운 가사를 쓴다고 하여 쉽고 평범한 단어들만 나열해 놓게 되면 우아한 맛이 없어지고 전반적인 내용이 유치해 지기 쉽습니다.
쉬운 가사는 선율창작에도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되며 좋은 노래가 될 수 있는 조건으로 됩니다. 쉽게 적혀 있는 가사는 작곡가의 공감을 불러 일으키기가 그 만큼 쉽게 되기 때문에  작곡가는 깊은 애정을 가지고 노래를 작곡하려 할 것입니다. 다른 곡을 만들 때보다 애정이 많다면 분명 다른 곡보다는 좋은 노래가 될 것입니다.
대중적인 것과 고상한 것은 서로 대립하여 있거나 떨어져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흔히들 대중적인 것은 고상한 것과 떨어져 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때문에 가사를 쓸 때에도 대중적인 것을 써야겠다고 결정을 하고 난 후 쓰기 시작한 가사는 고상한 가사가 되기 어려운 것으로 미리 간주하여 고상함을 풍부하게 해 주는 단어들을 일부러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것은 가사창작의 큰 잘못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가장 대중적인 것이 가장 고상하다는 것을 새롭게 인식해야 하겠습니다. 대중적인 것과 고상한 것은 서로 통일되어 있습니다. 서로 잘 맞물리면서 대중들의 일상적인 언어로 나타나게 됩니다.
고상하다는 것은 권위주의적이라는 말과 아무런 인연도 없으며 오직 민중들의 언어생활 속에서만이 우러나오게 됩니다. 민중들의 삶 자체를 아주 부드럽고 대중성 있게 표현하게 되면 가장 우아한 가사로 됩니다. 민중들의 아기자기한 삶이나 처절한 투쟁이 담긴 삶을 민중적인 언어로 표현해 낸다는 것은 서로 주고받는 회화어에 가까우면서도 시적인 리듬을 타는 가사로 되기 마련이며 자연스럽게 완결구조를 갖게 됩니다. 이러한 가사가 대중적이면서 고상한 가사로 되겠습니다.

이 정도면 가사를 쓰는 방도에 대해 이론적 토대가 마련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올바른 이론 없이 투쟁에 승리할 수가 없듯이 작곡에 있어서도 창작의 기본적인 관점의 문제는 중요한 창작요건으로 나서게 됩니다. 따라서 작곡가가 가져야 할 기본적인 관점을 정리하고 활동 속에서 구현해 낼 수 있도록 힘 있게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구체적으로 가사를 쓰는 방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이 후 (실습과 더불어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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