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렀던 기억을 간직하고 있어요
가지 끝에 매달린 이파리 한 잎 조차 풍성했던 여름의 그림자
이제는 모두 떨궈 앙상하게 서 있지만
붉은 비단으로 겨울을 기다리던 가을도 있었죠
마른 잎 하나 간직하지 못했다고
원망하지 말아요
지난 기억으로 지금 모습, 보기 싫다고 저어하지도 말아요
지금 내 안에 머금은 생명은
앙상한 가지 끝에 한 숨 한 숨 매달린
겨울을 함께 보내는 시간에 대한 연민
이제 다시 꽃도 푸른 잎도 피우지 못한다 한들
지금 함께 겨울을 보내는 시간에 대한 약속
최선을 다해 가파른 바람을 품고
가지를 꺽는 눈 덩이의 가혹함을 견디는
절대 다시 푸르름이 오지 않더라도
절대 다시 붉은 황홀함을 입지 못하더라도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이 시절을 통과하는 시간에 대한
마지막 남은 간절함
나무는 겨울을 품에 안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