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9.08 20:19

면사포 쓴 동지에게

조회 수 529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면사포 쓴 벗에게




벗이여 사랑하게나 마지막 그 순간까지
설운 고통의 시간들 사라져 가는 날까지
천만설 가득한 시련속에 피어날 사랑이여
눈물도 기쁨 시련도 행복 그렇게만 살아가게

영원히 함께하게나 그 한 몸 다할 때까지
가파른 언덕 넘어서 무지개 피는 날까지
천만설 가득한 시련속에 설움만 가득차도
맹세한 언약 잊지 말자고 면사포에 새겨두게

* * * *

'면사포 쓴 동지에게'라는 노래인데 '면사포 쓴 벗에게'로 부르는 사람이 많아서 나도 그렇게 써 보았다.생일이나 결혼 축하곡 같은 것은 일상에서 자주 필요로 되는 노래이다.별다르게 큰 예술적 동기가 없더라도 만들 수 있는 노래가 이런 부류의 노래라고 생각한다.부담없이 작품을 내 올 수 있는 구조에도 아주 작은 창작적 동기나마 있게 마련이고 창작자 마다 창작열정의 발현지점은 천차 만별이다.서로 다른 동기적 차이에 의해 똑같은 제목을 갖더라도 노래의 선율과 내용이 주는 분위기는 판이하게 나타난다.
즐거운 날에 즐겁게 불러야 할 노래들은 가급적 경쾌한 선율로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게 해야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상례이다.슬픔이 있는 곳에 필요되는 노래는 그에 맞는 정서의 선율로 표현해야 한다는 등이 일반론적 견해다.그럼에도 전혀 그렇지 않은 형상으로 표출 된 것은 창작주체가 갖게 된 예술적 동기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일반적인 노래이더라도 이런 노래가 필요하니 만들어야겠다로 출발하는 것보다는 그런 환경에서 받아안는 실천적 정서로 출발하는 것이 창작의 본질적 출발이다.그랬을 때 각기 다른 개성들이 사상의지적 통제아래 다양하게 표출될 수 있을 것이다.어떤 추모곡이 어울리지 않게 빠른 진행으로 긴장을 주는 것은 슬픔을 넘은 분노의 역어적 표현이다.즐거운 노래가 되어야 함에도 슬프게 울려 퍼지는 것은 창작주체의 예술적 정서가 발생되는 지점이 그러하기 때문일 것이다.

노동현장에서 힘있게 투쟁해 온 여성동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사람들은 저마다 바쁘다는 핑게로 소중한 사람들을 자주 잊고 산다.나도 예외는 아니다 가끔씩 그리운 사람들을 둘러보면 수도 없이 많은데 여간해서 연락하고 살기가 힘들어진다.이야기 하고자 하는 여성동지도 마찬가지로 벌써 여러 날째 못보고 산다.노동운동의 대열에 서서 투쟁하는 당참이 눈에 선한 그는 내게 있어 꽤나 소중한 사람이다 허물없이 생활얘기를 주고 받을 수 있는 몇 안되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다.그런데도 그가 결혼한 이 후부터는 도무지 마음을 터 놓고 만나기가 힘들다.구질구질한 삶의 봉건적 제약도 많고 빨려들어 가는듯한 생활고도 장벽의 요인이 된다.하루의 생존에 허덕이는 횟수가 결혼전보다 많아진 탓도 한몫 거든다.
개인의 이해득실의 차이가 현저해지면 시들어 버리는 그런 만남에 비하여 아무 제약없이 전선에서 만나 다정스런 오누이로,동지로 대하게 되던 날에 끈끈한 애정으로 서로에게 믿음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우리만의 행운임에 틀림없었다,때론 스승이되고,때론 노동을 배워가는 학생이되기도 하면서 남자와 여자라는 벽을 사이에 두고 시원스런 가을벌판을 뛰어 다니던 날에 그여성은 불현듯 사랑을 배웠다.나의 친구를 평생의 반려자로 선택한 것이다.얼떨결에 난 중매장이가 되고 말았다.
두 사람은 짧은 만남의 시간을 통해 정신없이 결혼 이라는 길로 접어든다.불행히도 난 징역 생활을 해야했고 그들을 생각할 때면 웬지모를 걱정이 드리워지기도 했다.결혼이란 것이 그렇게 짧은 만남을 통하여 이루어 진다는데 대한 일종의 두려움과 가까운 사람의 앞날에 대한 쓸데없는(?) 불안같은 것이었다.어느날 접견장에서 둘이가 불현듯이 결혼통보를 해 왔을 때 당황함이란 꽤 나를 허둥대게 한 것같다.지금도 만난지 서너달만에 결혼할 수있다는 것이 신기할 뿐이다.내가 결혼을 잘 모르나 보다.어쨓든 서로의 생활조건이나 실정이 빠른결혼을 요구 했을진데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 뿐이었고 중간에 끼어있는 나를 빼 내려고 애쓴 기억이 있다.더 이상 내 문제는 아닐테니 말이다.
남들처럼 돈이 있고 버젓한 직장하나 있는 것도 아니고,활동가로서의 평생을 기약한 철저한 각인도 되지 않는 채 시작되는 결혼의 역사를 축복해 주는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다.실재 그런 무거움은 의외로 컸다.그를 알고난 이 후 그 여성동지가 빼 놓을 수 없는 탄탄한 활동가로 성장하기를 간절히 바랬던 탓에 앞으로의 진로와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는 그 사람의 결혼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한 사람의 동지를 만나 사랑을 다져가는 긴 노정을 생각해 보면 그런 고민쯤은 당연하다.조직사업에 필요한 탄탄한 활동가를 양성하기 위해 흘리는 노력에 비하면 그런 고민쯤은 남일이나 걱정하고 있는 할일없는 자의 시간낭비가 절대로 아니다.
갖가지 두서없는 고민들이 징역방을 수놓을 때 결혼이란 바퀴는 예정대로 굴러가고 무수히 펼쳐지게 될 그들의 앞날에 소리없는 징역축복을 보내야 했다.결코 생활에 찌들지라도 생활에 져버리고 마는 우리는 되지말자는 말과 함께 실어보냈다.결혼으로 보게되는 많은 동지들의 소시민적 생활을 그리워 하지는 말자고,두 사람의 가슴에 전하고 픈 나의 하루를 그들의 결혼날에 보태주었다.
그 날은 노래라도 한곡 보내주고 싶었는데 마음같이 머리가 움직여 주질 않는다.그들 사이에서 느끼는 걱정거리들이 나를 위축되게 했는지 열정이 타오르지 않는다.내용을 충분히 움켜 쥐고도 노래는 정치를 발생시키지 못하고 세월은 흐른다.

시간이 지나고 어느메 쯤일까! 그와는 다른 한 쌍의 남여가 접견장에 들어섰다.그 날은 두 사람이 결혼한 날이었다.쳐다보는 두 사람의 표정이 결혼한 행복만큼 표현되고 있지 못하다.오히려 좋은 기분을 감추려는 표정이다.안에 있는 내게 괜한 미안함을 느끼는 모양이다.신혼여행의 첫 귀착지가 이런 어둔 곳이라니,사랑이 있는만큼 분노는 때를 가리지 않고 박차 오른다.조국의 현실이 주는 또 하나의 고통이다.
해방된 새날을 위해 뛰는 사람이 자신의 안일을 돌보는 이 없겠지만 그들의 결혼은 새로운 투쟁의 시작이요,고난이며,개인적 안일과는 인연이 없어야 한다.그렇지 않고서는 백이면 백 모두가 생활의 질곡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저절로 소시민이 되고만다.그러니 부디 높은 오늘의 결의를 영원까지 간직 했으면 좋겠다는 말로 접견장 얘깃거리를 덧씌운다.힘들어 질 그들의 앞날을 걱정하는 말도 건넨다.갖힌 나도 스스로 주체하지 못하면서 두 사람의 만남을 걱겅해야 하는 앞뒤 바뀐 사랑이 바로 우리들의 사랑이다.
면사포 쓴 벗에게는 솟아오르는 힘을 발휘하여 접견장의 스산함을 밀어 재치고 돋아났다.제목에 걸맞게 즐거워야 할 내용과 선율이 그렇지 못한 것은 그 날의 만남과 그들의 결혼이 순탄치 않는 길을 예고한 연유이다.

아무리 가벼운 노래거나 일반적인 노래라 할지라도 예술정치가 발생되는 지점은 있다.생활의 감동이 열정을 주는 계기는 있다는 말이다.예술적 감동을 주는 생활과 만남,그것은 작품의 내용을 통제하는 결정적인 요소가 된다는 것을 이 노래는 여실히 증명해 주고 있다.
노래의 중심점이 되어 준 두 쌍의 부부들은 지금 모두 잘 살고 있다.비좁은 방안에서 갓난애와 무슨 이유를 들어 어떤 일을 가지고 티격태격 다툴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보이는 눈에는 잘살고 있다.오늘 만큼보다는 결혼하던 그 때만큼 사랑하기 위해 무진 애를 쓰는 참 사랑의 주체가 되기를 진정으로 바란다.언젠가 자신의 결혼날에 필요하다고 이 노래의 악보를 찾던 서울의 한 동지에게 바쁘다는 핑게로 그려주지 못한 미안함을 아울러 전한다.
모두가 잘 살기를 바란다
변치 않을 사랑만큼 생존을 딛고 더욱 풍부한 조국사랑과 투쟁을 일구는 일꾼들이길 기원하겠다.
통일되는 그 날까지만이라도!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5 나뭇잎이 아니라오 종화 2002.09.08 540
» 면사포 쓴 동지에게 종화 2002.09.08 529
23 갈길은 간다 종화 2002.09.08 780
22 고난의 행군 종화 2002.09.08 645
21 꽃잎하나 받쳐 든 접견장 사랑이여 종화 2002.09.08 608
20 투쟁의 한길로 1 종화 2002.09.08 1062
19 바쳐야한다 1 종화 2002.09.08 1359
18 여성전사 종화 2002.09.08 555
17 한별을 우러러보며 종화 2002.09.08 901
16 지리산 종화 2002.09.08 835
15 파랑새 4 종화 2002.09.08 903
14 노랫말과 시 종화 2002.09.08 658
13 치열 종화 2002.09.08 503
12 새로운 만남 종화 2002.09.08 487
11 반편이 종화 2002.09.08 397
10 파란을 일으키는 돌이 되어 박종화 2002.09.02 413
9 실패보다 무서운 것은 중단이다 박종화 2002.09.02 430
8 최선은 아름답다 박종화 2002.09.02 369
7 목숨 박종화 2002.09.02 368
6 노래가 전하는 말 박종화 2002.07.25 444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Next
/ 4

LOGIN

SEARCH

MENU NAVIG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