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5월 27일 새벽 엄청난 계엄군 병력이 시민군의 본부 도청을 향하여 초토화 작전을 진행하고 있었으니......
(가두방송)
새벽 2시 계엄군이 진입하고 있다는 젊은 여자 목소리의 다급한 가두방송이 밤의 정적을 가르며 시가지를 울렸다. 도청의 시민군들은 드디어 계엄군에 포위되었음을 직감하고 술렁이기 시작했다. 수류탄으로 자폭할 것인가? 그들의 총에 죽을 것인가? 두가지 죽음의 길을 놓고 잠시 서로 다른 의견들이 오갔다.
새벽 3시 30분 아니나 다를까 지척에서 별안간 총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각종 중화기 소형화기의 발사음이 도청을 원심으로 반경 2킬로미터 일원까지 2,3초 간격으로 계속 울려퍼져갔다. 가두방송을 듣고 도청을 향해 집을 뛰쳐나온 300여명의 시위대는 도청주위를 맴돌다가 200여명이 체포되고 나머지 사람들은 총살 당했다. 순식간에 시체 50여구가 도청 앞에 나뒹굴었다. 도청 상황실에는 250여명 정도가 남아있었다.
그때 한 청년이 역설했다.
"자 우리의 최후의 순간이 왔다. 우리 청년들은 목숨을 걸고 끝까지 투쟁하자.
여기 있는 고등학생들 너희들은 총을 놓고 빨리 대피하라.
어떻게든 살아남아 병신이 되더라도 이 최후 순간의 산증인이 되어야 한다.
동지들아! 이 나라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의 빛나는 미래를 위해 온 몸으로 이곳을 사수하다가 우리 모두 장렬하게 죽어가자"
청년의 눈빛이 번뜩였다. 장내는 숙연했고 수류탄을 껴안고 있던 중고등학생들은 흐느껴 울었다.
새벽 4시 10분 도청은 계엄군에 의해 점거되었고 양측은 마지막 접전을 벌였다. 그러나 화력이 딸린 시민군은 계엄군과 상대가 안되었다.
동료들은 한 마디 말도 남기지 못하고 속속 숨을 거두었다.
새벽 6시 최후의 항전 끝에 도청을 사수하던 시민군들은 전멸하다시피 하였다. 마침내 전우의 시체를 넘으며 남은 시민군이 두손을 들고 나오고 150여구의 시체 및 부상자가 트럭에 실려져 나왔다. 실려가는 전사들은 아무 말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