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9.03 12:10

어쩌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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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많이 아프다
예전같지가 않다  
똑같은 하루 일량인데도 몸은 말을 들어주질 않으니 무지하게 몸조심해야 할까보다
오늘도 여전히 목감기에 기관지 천식까지 겹쳐서 말이 아니다
편도선으로 부은 목에 천식까지 합병증으로 왔으니 죽을 맛이다
눈에까지 열이 올랐는지 눈이 빨갛게 충열되어 마치
눈병에 걸린 사람처럼 보인다
한 마디로 몸이 우글쭈글이다
별다른 방법없이 시름거리느니 약먹고 사우나나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사우나를 향했다
땀을 빼고 밖을 나오니 비가 억수룩 쏟아붓기 시작한다
하필 내가 나오니까 쏟아질게 뭐냐
정신없이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멍하니 사우나 앞을 서성거려야 했다
비를 그으며 사우나탕 앞 한쪽 벽면에 기댄 채 내리쏟는 빗소리를 감상하고 있을 수 밖에 별다른 방법이 없다
앞쪽으로 택시가 지나가는 일도 없고 그렇다고 이 장대같은 비를 맞고 집으로 갈수도 없고...

한참을 서 있노라니 기관지염이 심해져서 끓고 있던 가래가 목을 간지럽히며 올라오려한다
생기침으로 가래침을 끌어 올리고는 퉤! 하고 앞쪽으로 뱉었다
그 순간 이게 왠일인가 !
비를 맞으며 사정없이 뛰어오고 있던 아가씨가 바로 내 앞을 지나가는 순간이었다
비를 피하려고 한 쪽 벽에 기대 서 있었던 나는
옆에서 달려오는 사람을 확인할 수가 없는 상태였다
게다가 비가 그토록 많이 내리고 있는 순간에는
무슨 소리조차도 듣기 힘든 지경이었다
내가 뱉어낸 끈적끈적하고 역겨운 가래침은
기관지 천식이라는 말을 타고 유난히도 진노란색으로 물들인 채
아가씨의 면상에 직사포로 꽂히고 말았다
옷은 물에 철철 젖은 채로 바로 앞 자기네 집까지 힘껏 뛰어가고 있던 아가씨에게는 말할 수 없는 분노였으리라

아고메! 어쩐다냐!
아가씨! 요것을 어째!
나도모르게 손을 내밀고 아가씨의 얼굴을 닦아내려던 순간
아가씨는 사정없이 내 손을 뿌리치고 쏘아본다
오메! 또 무슨 날벼락이 떨어질란다냐?를 속으로 생각하며
오만가지 대처방안을 궁리하고 있는데
이 아가씨 가래침을 손으로 훔치고 쳐다보더니
그 자리에 앉아서 엉엉울어 버린 것이 아닌가???

어쩌면 좋아!
알고 그런 것도 아니고
비오는 날 길바닥에 가래침 한 방 허쳐분 것이 요로코롬 큰 죄가 돼뿐다냐
아가씨는 울고있고
비에 맞서 나와 똑같은 처지가 되어 서 있던 아저씨 아줌마들은 그 아가씨가 안쓰러우면서도 터질 듯한 웃음 가리기에 바쁘고...

결국
아가씨는 주변을 두리번 거리더니 이 곳을 빨리 벗어나는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는지 주저없이 달려나간다
장대비가 쏟아지는 길거리는 아무 것도 아니다
이 순간의 창피함을 하루빨리 벗어날 수만 있다면 하는 심정으로
뒤돌아 보지도 않고 달려나간다
내가 언제 주저앉아 울었냐는 듯이 힘차게도 달려 나간다

아!
갑자기 대학시절 아르바이트 한다고 포장마차를 만들어
학교 앞에 벌려놓고 장사하던 때가 기억이 난다
그 때 그 시절
시리게도 가난했던 그 시절
나는 어묵이며 닭발이며 곰장어며 하는 그렇고 그런 안주거리들과 함게 술을 팔았는데
그 당시에는 모든 구이를 만들기 위해서 쓰는 화로가 바로 연탄불이었다
연탄불을 살리는 일이 그 날 포장마차 일과의 시작이다
학업이 끝나자 마자 학생들이 술밭으로 내려 올 시간 이전에 번개탄을 사다가 급하게 연탄불을 살려야만이 온전하게 하루 장사를 시작할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부지런히 화로에 연탄을 넣고 다시 그 위에 번개탄에 불을 붙이고 그 위에 다시 연탄 한 장을 올려놓고 빨리 불이 붙으라고 엎드려서 화로 밑바닥에 뚫려있는 구멍에 입을 대고 후후 불고 있던 때였다
(포장마차 옆쪽에서 불을 붙이고 불이 붙고 나면 포장마차안으로 화덕을 옮기기에 옆에서 지나오는 사람들은 포장마차에 가려서 화덕에 불 붙이고 있는 내 모습은 보이지가 않는다)
어떤 여학생이 하교길에 그 곳을 지나다가 씹고 있던 껌을
퉤! 하고 뱉고 지나갔다
포장마차 옆쪽인지라 음침하여 껌같이 약간은 불법적인 이물질 뱉기가 좋았을게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뱉어 낸 그 껌이 엎어져서 밑구녕을 후후 불어대고 있는 내 낯바닥에 쩍 달라붙은게 아닌가!  
참 그때 그 꼴이라니...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그 학생을 보니 내가 더 미안해 지고 말아서 괜찮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함박웃음까지 덤으로 얹혀주었었다
그리고 다음날
그 여학생은 자기과 친구들을 한 바가지로 데려와 내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셔주었다

빗속을 가르며 내달리는
약간은 뚱뚱해 보이는 아가씨의 뒷모습은  
망가진 내 몸뚱아리에게 또 한 번의 가래침을 일렁이게 하면서 목을 간지럽히고 비는 여전히 하늘에서 땅으로 인정사정없이 꽂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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