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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작곡가가 만든 '선구자'의 유령

조두남 친일의혹, 중국 연길 현지 확인

김재중 기자    

일주일이 넘는 연변 현지취재를 통해 조두남과 관련된 일그러진 역사를 바로잡는다. 초야에 묻혀진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발굴해 추앙하기는 커녕, 친일 예술인을 독립투사의 반열에 올리는 '역사에 대한 배신행위'가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 것인가? 중국 현지에서 취재중인 김재중 기사의 현지송고기사.

·관련기사 ==> 일송정 푸른솔에 「선구자」는 없었다  


2002년 11월호 월간 <말>을 통해 중국 연변의 조선족 작가 류연산씨가 제기한 '조두남의 친일의혹'이 일파만파로 번져가고 있다. 작곡가 조두남의 음악적 고향이자 주무대였던 마산시가 생전의 업적을 기려 '조두남 기념관'을 건립하려 하자 지역 시민단체 등에서 반발하면서 문제가 불거진 바 있었다. '친일작가의 기념관이 왠 말이냐'는 문제제기였다. 현재는 이 과정에서 시민단체 관계자 3명이 구속되는 불상사까지 벌어진 상태.


조두남  
기자가 이곳 연변땅을 밟은 것은 지난 달 24일. 1945년 이전 신안진, 목단강 등 만주일대에서 활동했던 조두남의 행적을 뒤 쫓기 시작한 것이다. 이유인 즉 '온 국민의 애창곡이 된 '선구자'의 작곡가 조두남과 작사가 윤해영이 과연 추앙받을 만한 인물인가?'라는 의문을 풀기 위해서 였다. 한편으로는 월간 <말>이 2002년 11월에 제기한 '일송정 푸른솔엔 선구자가 없었다' 제목의 기사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한 일이기도 했다.

기자는 월간 <말> 2003년 7월호에 소개된바 있는 연변 원로 음악인 김종화 선생을 먼저 찾았다. 지금의 표현대로 그를 설명하자면 '조두남 밴드의 기타리스트'정도로 소개할 수 있다. 지병으로 집중력이 다소 흐려진 김 선생은 조두남에 대한 그리움에 지금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직도 음악적으로 존경하는 마음이 커서 일부러 조두남을 흠집낼 만한 사람은 결코 아니었다. 그런 김 선생이 기억하고 있는 조두남은 "음악적으론 뛰어나지만 독립운동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그의 기억속에 있는 조두남은 오히려 "마약중독에 빠진 나약한 음악가"에 불과했다.


조두남은 왜 윤해영을 부정했는가?


해방이후 국내에서 활동했던 조두남은 '선구자'의 작사자 윤해영을 1932년 만난이후, 줄곧 본적이 없는 '신비감에 쌓인 독립투사'로 회상한 바 있다. 그러나 조두남의 실수는 역사를 멀리 내다보지 못했다는데 있었다. 한-중이 자유롭게 왕래하고 연변학자들이 제 목소리를 내게 될 날이 올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결론인 즉, 조두남은 여러가지 거짓말을 했다. 선구자의 원곡이 '용정의 노래'라는 점, 훗날 개작을 했다는 점은 스스로도 인정하는 사실이지만, 작곡 시점이 1932년 이라는 점, 작곡 후 윤해영을 만나지 못했다는 점은 사실과 크게 달랐다. 그렇다면 조두남은 왜 윤해영을 "만나지 못했다"고 크게 부정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윤해영이 당시 만주에서 한 끝발 날리던 친일작가 였다는 사실을 조두남 자신이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독립투사의 노래인 '선구자'의 작사자가 노골적인 친일작가 였다는 사실을 감추고 싶었던 것이다. 윤해영의 친일 행적에 대해서는 국내 학자들이 이미 연구한 바도 있지만, 연변지역에서는 관련자료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원로 음악인 김종화 선생은 "1944년 경, 조두남의 소개로 윤해영을 만났고 이후 음악활동을 함께 했다"고 소개했다. 선구자의 원곡인 '용정의 노래'를 만든 것도 이무렵이었으며, 이 노래를 공연할때 다른 친일곡도 함께 발표했다는 것이다. 윤해영의 친일 행적은 연변 역사학계에서는 상식으로 통하는 일이었다. 시대상황으로 봐서 음악가 조두남 보다는 시인 윤해영이 훨씬 더 '끝발 날리던' 유명인이었던 셈이다.


친일노래 제조기 '조두남-윤해영 콤비'


원로 음악인 김종화 선생은 친일노래인 '아리랑 만주'(윤해영 작사, 조두남 작곡)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노래까지 직접불러 줬다. 1932년에 '용정의 노래' 가사를 조두남에게 전해주고 홀연히 사라진 윤해영은 공교롭게도 1941년 만주국의 관변언론인 <만선일보> '신춘문예당선민요'부문에서 1등을 차지하게 된다. '아리앙 만주'라는 친일시가 수상작이었다.

더욱 중요한 점은 바로 이 친일 가사에 곡을 붙힌 당사자가 조두남이라는 점이다. 김종화 선생은 "당시 만주에서 그런 곡을 만들수 있는 사람은 조 선생 밖에 없었다"라고 회고했다. 의도했던 그렇지 않든 작곡가 조두남은 노골적 친일 작사가 윤해영의 친일시에 곡을 붙이게 됐다.

때문에 조두남은 자신의 기억속에서 1940년대와 윤해영 이라는 인물을 얼마나 지우고 싶었을까. 이제 어느정도 실마리가 풀렸다. '용정의 노래'를 1940년대가 아닌 1932년에 작곡했다고 거짓말한 이유, 윤해영을 다시 본 일이 없다고 거짓말한 이유. 그 뒤에는 그렇게 감추고 싶었던 조두남의 부끄러운 과거가 담겨 있었다.

그러나, 조두남의 1940년대 행적은 그의 소망과는 달리 감추어지지 못했다. 그 당시 음악활동을 함께했던 동료(김종화 선생)가 살아남아 그의 과거를 세밀하게 증언하고 있고, 그가 그토록 부정하고 싶었던 윤해영의 치부가 역사의 기록에 그대로 담겨있을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조두남을 윤해영과 같은 노골적 친일파로 매도하기는 곤란한 점이 많다. 적어도 그 당시 조두남은 윤해영만큼 유명인사도 아니었고 또 적극적으로 나서 친일노래를 작곡한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친일문제를 떠나 양심있는 예술인이 해서는 안되는 또 다른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바로 표절 의혹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선구자' 표절시비


"총 16마디 중 13마디가 같거나 비슷하다" 1982년 8월 음악평론가 박봉석씨는 가곡 '선구자'가 1922년에 이은상 작사, 박태준 작곡으로 창작된 '님과 함께'라는 노래의 표절의혹이 있다는 점을 조심스럽게 제기 한 바 있다.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온 연변대학 최용린 조선어문 교수는 "틀림 없는 표절곡"이라고 딱 잘라 이야기했다.


악보  
99년 4월, 연변대학 예술학원 김창근 교수는 연변음악가 협회가 편집한 '연변음악'에 "두 곡은 조성이나 박자, 리듬, 결구 형식이 같다"라고 기술한 바 있다. 두 사람의 살아 생전에 표절 의혹이 결론내려지지 않았지만 적어도 연변 음악계 일각은 '선구자'는 박태준 작곡의 '님과 함께'의 표절곡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조두남은 과연 추앙받을 만한 인물인가? 일주일이 넘는 연변 현지 취재를 통해 기자는 확실한 답을 얻었다. 결론은 "절대 아니다" 이다.

조두남을 음악적으로 존경하는 제자나 지인들이 사적으로 그를 기념하고 추억하는 것까지 탓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국민의 세금으로 그를 추앙하는 기념관을 건설한다는 것은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 될 것이다. 기자는 일주일이 넘는 연변지역 취재를 통해 초야에 묻혀진 수많은 독립운동가의 이야기를 전해 듣기도 했다. 그들을 발굴해 추앙하기는 커녕, 친일 예술인을 독립투사의 반열에 올리는 '역사에 대한 배신행위'가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 것인가? 이제 조두남과 관련된 일그러진 역사는 바로잡히게 될 것이다.


월간 <말> 8월호 상세보도, 연변 특집 예정


기자가 만난 연변지역의 역사학계, 음악계 권위자들의 조언, 원로 음악인 김종화 선생의 증언과 구체적인 관련자료 등은 이달 18일 경 출간되는 월간 <말> 8월호 특집을 통해 독자들에게 제공할 예정이다. 이 특집 기사에는 연변지역에서 취재한 주목할 만한 다른 발굴특종 기사도 함께 게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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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연길에서 김재중 기자 송고

2003년07월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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