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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 기획 > 기획일반      
  

[5·18 광주항쟁 25주년] ‘광주’가 바꾼 문화예술 지형도  

입력: 2005년 05월 17일 18: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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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광주민주화운동은 국내의 문화지형을 진보적 민족문화운동의 시대로 바꾸는 분수령이 됐다. 유신독재의 억압체제에 억눌려 간간이 정치적 저항운동만을 벌여왔던 문화예술분야는 ‘5월 광주’를 경험하면서 한과 저항의 정서를 결합, 보다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태도로 변했다.

1970년대 후반부터 싹트기 시작한 마당극운동, 미술운동, 그리고 노래운동 등 공동체적 문화운동은 5·18과 80년대 민주화운동의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집회 현장에 동원된 시, 노래, 판화(인쇄물), 공연(마당극·탈춤), 플래카드(걸개그림), 무대설치 등은 모두 새로운 문화운동의 각 장르로 발전했다. 또한 5·18의 비극적 종료는 이 땅의 문화예술가의 삶을 지배하면서 끊임없이 예술적 상상력을 자극했다.


서울대 정근식 교수는 5·18 이후의 문화운동을 크게 침묵의 시대, 증언의 시대, 재현의 시대로 나눈다. 80년대 전반기인 침묵의 시대에는 시와 노래, 그리고 판화가 가장 중요한 장르였으며 85년부터 90년대 초까지 증언의 시대에는 문자, 사진, 영상 증언 외에 걸개그림, 연극, 소설이 중심장르였다는 것. 93년 문민정부 출범 이후 재현의 시대에는 연극, 영화 등을 통한 상처의 치유에 관심이 모아졌다고 분석한다.


그는 “5·18 이후 문화운동은 문화운동권이라는 영역의 독자적 형성, 공동체주의적 지향, 그리고 경건주의라는 전통으로 특징지어진다”면서 “이 시기의 문화운동은 이후 평화, 인권, 통일의 문제를 부각시키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특히 88년 말에는 각 분야에서 활동하던 진보진영의 예술인들이 새로운 통합조직 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을 출범시켜 이 땅의 보수적인 문화예술 지형도에 일대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또 문화예술 운동의 경험은 2002년 월드컵의 응원과 노사모의 활동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5·18문학’ 한때 따돌림 당하기도-


◇문학=5·18은 80년대 전체를 관통하는 정신이었으므로 문학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리얼리즘은 거부할 수 없는 조류였다. 당시 활동하던 민중작가군(群)에는 시인 오봉옥, 소설가 송기숙처럼 시민군이나 광주항쟁 수습대책 위원으로 활동한 이들도 있었다. 90년대 들면서 5·18 문학은 다소 시들해졌다. 소설가 정도상은 “94년 시인 김남주가 숨진 뒤로는 5·18이 문학에서 부정되고 언론·평단·문예지로부터 따돌림당하는 경향이 생겨났다”고 말했다.


그러나 90년대 후반 윤정모의 ‘밤길’, 임철우의 ‘어떤 넋두리’, 홍희담의 ‘깃발’, 공선옥의 ‘씨앗불’ 같은 단편들은 5·18을 한단계 성숙한 시각으로 다뤘다. 2000년대 들어 방현석, 정도상, 공선옥, 공지영 등에 의해 5·18은 문학 속에서 당당하게 복구되었다.


-걸개그림등 80년대 상징으로-


◇미술=5·18은 미술계에 민중미술이란 신선한 미술양식을 탄생시켰다.


‘5월의 화가’들로 불린 민중미술인들은 분단과 외세의 위협, 민주화에 대한 뜨거운 열망, 도시빈민의 참혹한 삶, 붕괴되는 농촌의 실상, 폭력적 권력에 시들어가는 민중들의 생활 등을 직설적으로 드러냈다. 오윤 홍성담 김봉준 이철수 등은 판화를, 신학철 강요배 김정헌 민정기 임옥상 등은 회화를 통해 치열한 시대정신을 표현했다.


걸개그림은 대학가, 노동현장 등으로 확산되면서 80년대의 상징이 됐다. 최병수의 ‘한열이를 살려내라’가 대표적. 5·18을 뿌리로 한 민중미술은 87년 6월항쟁으로 활짝 꽃을 피웠다. 민중미술은 최근 환경·반전·생명운동을 통해 5·18정신을 일깨우고 있다.


-‘꽃잎’ ‘박하사탕’등 영화 봇물-


◇영화=광주의 진실을 온 국민에게 알린 건 생생한 다큐멘터리 영상이었다. ‘꽃잎’(1996)과 ‘박하사탕’(2000)은 상업영화로 극장에 내걸려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보다 앞서 ‘오! 꿈의 나라’(1989), ‘부활의 노래’(1990) 등의 장편 극영화와 몇몇 독립영화들이 ‘80년 광주’를 각인시켰다. 광주항쟁을 본격적으로 이야기한 최초의 영화로 35분짜리 단편 독립영화 ‘칸트씨의 발표회’(1987)가 꼽힌다. 김태영 감독의 ‘황무지’(1988)는 광주의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군 탈영병 이야기다.


조영각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아직까지 광주를 직접적으로 다룬 영화가 없는 건 아쉬운 일”이라면서 “급속도로 상업화된 영화계가 너무 빨리 ‘5월 광주’를 잊었다”고 지적했다.


-시위현장선 민중가요 애창-


◇가요=5·18을 기점으로 서정적·상징적인 노래가 투쟁적·구체적으로 ‘진화’했다. 김민기의 포크송들은 집회 현장에서 불리며 민중가요로 인식됐다. 82년 만들어진 ‘님을 위한 행진곡’은 거의 모든 시위현장에서 빠지지 않는 애창곡이 됐다.


민중가요의 성과는 84년 결성된 ‘노래를 찾는 사람들’(노찾사)의 활동에서 집약적으로 나타났다.


남도의 정서와 민족주의가 혼합된 노래를 만들었던 박종화는 최근 두 아들과 함께 ‘단이와 결이의 통일노래’라는 음반을 냈다. ‘광주출정가’를 만든 정세현은 이후 ‘법능’이란 법명을 받고 불가에 귀의했다.


81년 대학가요제 대상을 받은 정오차의 ‘바윗돌’은 광주의 비극에 대한 제도권의 눈물이었다.


〈도재기·조장래·백승찬·송형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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