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미터 사이를 두고

by 종화 posted Oct 01,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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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미터 사이를 두고
박종화

일미터 사이를 두고
그와 나는 평양의 순안공항에서
이별이라는 이름으로 만났다
그는 음악을 연주하고
나는 음악을 듣는다
그는 평양의 어느 기업소 연주부이고
나는 남쪽의 작곡가이다

일미터 사이를 두고
그와 나는 연주하고 듣는 눈빛으로 만났다
그는 넓적하고 쭈글린 얼굴로 연주하고
나는 야윈 각진 얼굴로 듣는다
그는 고난이라는 세월의 승리를 연주하고
나는 시련이라는 불혹의 나이로 듣는다

일미터 사이를 두고
그와 나는 떨다가 울다가 엉망진창이다
그는 떠는 입술로 연주하고
나는 설움의 눈물로 검정색 클라리넷을 듣는다
그는 다시 눈물로 이별송을 연주하고
나는 다시 미어지는 가슴속 답답함으로 들었다

일미터 사이를 두고
처음 만나는 사람끼리
단 한 번의 악수도 못해본 사람끼리
그와 나는 슬프다
불지도 않으면서 주책없이 쏟아지는 마른 눈물만으로도
클라리넷을 연주 할 수 있다는 것에
떨리는 입술만 보고도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에
그는 슬프다
나도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