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라가 보내준 시집에서 시 한편.......

by 노을이 posted Oct 01, 200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나이를 먹는 슬픔
- 김용락-

뜨락에 서 있는 나무를 보면서
문득 세월이 흐르고 한두 살씩
나이를 더 먹는 것이 슬픈 일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잎이 청정한 나무처럼
우리가 푸르고 높은 하늘을 향해
희망과 사랑을 한껏 펼 수 없을 만큼
기력이 쇠잔하고 영혼이 늙어서가 아니다
또한 죽음 그림자를 더 가까이 느껴서도 아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내가 마음속 깊이 믿었던 사람의
돌아서는 뒷모습을 어쩔 수 없이 지켜봐야 하는 쓸쓸함 때문이다
무심히 그냥 흘려 보내는 평범한 일상에서나
혹은 그 반대의 강고한 운동의 전선에서
잠시나마 정을 나누었던 친구나
존경을 바쳤던 옛 스승들이
돌연히 등을 돌리고 떠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것은
나이를 먹기 전에는 모르던 일이었다
돌아서는 자의 야윈 등짝을 바라보며
아니다 그런 게 아닐 것이다 하며
세상살이의 깊이를 탓해보기도 하지만
나이 먹는 슬픔은 결코 무너지지 않을 벽처럼 오늘도 나를 가두고 있다.


「기차 소리를 듣고 싶다」,창작과비평사,김용락,1996

Articles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