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그 생동감 넘치는 설레임이 느껴지네요..
오래한 사람들의 곰삭은 맛도 좋지만..

민중가요 3대 금지곡 중 하나인 '처음처럼'이 생각나네요..ㅎㅎ
처음의 그 마음.. 세월에 따라 종종 잊곤 하지만..
힘들 때마다 떠올리게 되는 그 마음..

그런데 혜원 님이 매니저셨군요..
어케 꽃다지 매니저도..ㅎㅎ

가장 어려운 일 중의 하나가 매니저인데..
온갖 궂은 일 도맡아 해야하고 그렇다고 빛이 나지도 않고..
언젠가 꽃다지 매니저가 저에게 묻더군요..
"누나 우린 즐거운 자리에 가면 안되는거예요?
힘들 때는 동지라는 이름으로 우리 부르면서 좋은 일 생기면 공연 취소하죠?"

'비상' 분들은 힘들고 지친 자리 뿐 아니라
기쁘고 행복한 자리에도 많이 함께 하시길 기원해요^^

-- 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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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이렇게 얼굴이 두꺼워졌는지..
>꽃다지 홈피에 자꾸 도배를 하고 있네요...^^
>만나서 하는 수다도 수다지만, 이렇게 글로도 수다가 가능하다고 믿으며
>행복에 겨워 혼자 떤 수다 내용, 나눠드리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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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1일 목요일. 홈플러스 노래패 '비상' 첫 공연이 있었다. 그것도 다른 단체한테 섭외를 받아서. 12월 8일 월요일. 대부분 휴무를 낸 언니들이랑 함께 노래연습 한 이야기는 이미 여기저기에 남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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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당일인 목요일에는 조금 일찍 만나서 ’비상' 노래연습을 죽 지도해 주었던 가수 명인 언니랑 몰아치기 연습을 했다. 물론 이날도 비상 언니들은 ‘휴무'를 내주었다. 저 자리에 온 언니들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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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판 연습 장소는 명인 언니가 일터인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강당. 때마침 연구소 분들이 거의 없어서 저렇게 조용해야만 하는 연구소 한 쪽에서 우리는 맘 편하게 노래연습을 할 수 있었다. 홈플러스로 복귀한 뒤로, 명인 언니랑 ‘노래연습'으로 만난 건 이 날이 처음. 월요일 연습할 때는 노랫말 되새기고, 노래 몇 번 불러보는 게 전부였건만 명인 언니랑 함께 하면서는, 역시! 노래의 느낌과 노래 분위기를 잘 살릴 수 있는 훈련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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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랜드 문화제 때 다 불렀던 노래들인데, 그 때 어떤 부분을 강조하자고 했는지, 이 부분은 어떻게 부르자고 했는지 우리도, 나도, 명인 언니도 처음엔 좀 가물가물해 했다. 나도 참, 그런 내용들이 하나도 기억이 안 나더라니. 하긴, 노래를 늘 ‘그냥' 불러왔지, ‘어떻게' 불러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불러 보지를 않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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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도 안 되는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렇게 기억 하나하나 더듬어 가며, 전문 가수인 명인 언니의 순발력 넘치는 지도로 어느 정도 ‘기본'을 갖춘 준비를 해낼 수 있었다. 월요일에 나랑 같이 노래할 때는, 공연 앞둔 준비라기보다는 그냥 노래한다는 게 좋아서 그랬을까. 마냥 신나게 부르던 언니들, 선생님 앞이라고 처음엔 또 조심조심 그러시고. 어쨌든, 선생님은 선생님이다. 그런 기운들, 자연스럽게 ‘잘 하는 쪽'으로 이끌어 주고. 이건 절대 매니저가 해낼 수 있는 몫이 아니라니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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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친목을 넘어선, 외부 공연이건 그 어떤 공연이건 남들 앞에서 노래를 부를 생각이라면
>앞으로도 죽 명인 언니 지도가 필요하다는 걸, 다시금 깨닫는다. 그래도, 이렇게 마음으로, 몸으로 함께 해 주는 선생님이 있다는 게 매니저로선 얼마나 든든하고 기운 나는지 모른다.
>
>명인 언니와 간단하지만 집중된 연습을 마치고 공연 장소로 갔다. 민주노총 서울 본부가 있는 곳이다. 회의를 마치고 온 이경옥 부위원장님까지 더해서 ‘비상' 공연팀은 나까지 모두 7명. 우리를 섭외한 단체는, 평등학부모회 라는 곳이다. 나도 이번에 공연 준비하면서 처음 알게 된 곳. 알고 보니, 참 괜찮은, 생각 좋은 교육 단체다.
>
>평등학부모회는 이런 일을 하려고 만들어진 곳이란다.
>
>1. 노동자, 민중이 교육 운동의 주체로 설 수 있도록 노력한다
>2. 사교육비를 근절하고 교육불평등을 타파한다
>3. 무상교육확대, 교육 여건 개선 운동을 통해 민중 교육권을 확대한다.
>4. 민중의 교육 참여를 확대하고 민중적 교육 과정을 확보한다.
>
>처음에 비상 회장 언니한테 이곳에서 연락을 했다. 평등학부모회 후원의 밤 공연을 해주었음 한다고. 그게 벌써 한참 전인데. 그 때 회장 언니가 나한테 연락이 왔다. 평등학부모회라는 곳에서 이런 연락이 왔는데 이걸 어쩌냐고. 어쩌긴 어쩌는가, 알아보면 돼지. 얼른 여기저기 알아보고 검색도 해보고. 결론을 내렸다. 우리가 공연 해 볼만 한 괜찮은 곳이구나.
>
>그래서 회장 언니한테 이 공연 했으면 좋겠다고. 괜찮은 곳 같다고. 그렇게 연락을 바로 해줬다. 그 때 언니가 해준 말이 참 기억에 남는다.
>“야~ 이제 정말 매니저다운데~ ^^"
>
>일하는 중간에 연락을 받고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던 회장 언니. 내가 후다닥 상황 파악해서 전달해주니까 좋았나보다. 그렇게 회장이랑 매니저는, 이 공연을 추진하기로 마음을 모았고. 이제 나머지 비상 언니들한테 연락하는 몫은, 회장한테 넘어간다. 그리고 그로부터 일주일 즈음 지나 나머지 언니들도 이 공연 하겠다고, 공연 날 휴무를 내겠노라는 답을 들을 수 있었다. 더구나 연습을 위해서도 휴무를 내주겠다는 말까지.
>
>그 때 얼마나 기뻤는지. 언니들한테 얼마나 고마웠는지. 이렇게 바로, 노래연습을 위해, 아니 공연을 위해 언니들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을 정도였다. 내가 너무 좋아하니까, 회장 언니가 이런 문자를 보내준다.
>“그렇게 기뻐하다니~~~ ^^"
>
>당연하지. 얼굴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언니들인데 같이 공연까지 하게 되었는데 내가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홈플러스 조끼가 없어서, 나름대로 옷을 맞춰 입은 우리들. 검정색 윗도리와 청바지를 입기도 했다. 그리고, 저 무대에서 노래를 했다. 아는 사람이 없어서 사진 찍어달라는 부탁을 드리지 못해 내가 찍은 사진은 없다. 하지만 평등학부모회 쪽에 부탁해서 다음 주에 사진을 받기로 했다.
>
>후원 주점 형식을 띤 ‘평등학부모회 후원의 밤.' 준비된 마이크는 두 대 뿐. 공연할 사람은 7명. 마이크를 포기하기로 했다. 7명이 나란히 서서, 모자란 내 생 기타 반주에 맞춰 상록수, 바로 그 한 사람이, 희망은 있다, 를 노래했다. 노래하기 전, 부탁을 드렸다. 마이크 없이 생으로 부르기에, 그리고 음식 먹는 자리기에 저희들 목소리가 잘 안 들릴 수 있기에, 잠시만 집중해 주셨음 한다고.  
>
>와~ 그 전까지 시끌벅적 술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던 분들이 우리들 노래 시작하자마자 마시던 술도 접고, 우리들한테 확 집중을 해주셨다. 그래서, 왁자하던 저 공간에 우리들 목소리가 잘 울려 퍼질 수 있었다. 얼마나 고맙던지. 더구나 열심히 박수쳐주고, 호응해 주고. 기타 치며 노래하던 나도 즐거웠고, 노래하는 언니들도 즐거웠고, 확실하진 않지만 드문드문 자리에 앉은 사람들 얼굴과 몸짓을 보았을 때 그들도 우리 공연을 즐겨 주시는 것 같았다.
>
>행복하게 공연을 마치고. 이럴 수가~ 출연료를 받았다. 늘 이랜드 문화제만 치러 온 우리들, 당연히 돈하고 상관없었고, 하물며 그 많은 민중가수들한테도 ‘파업 중'이기에 돈 한 번 제대로 준 적 없이 문화제를 치러 왔건만.  
>
>나도 흥분, 언니들도 흥분. 하지만 걱정도 함께 밀려온다. ‘우리들 노래가 그만한 돈 받을 건 정말 아니었는데. 돈 값 하려면 춤이라도 추고 그랬어야 되는 거 아닐까.’ 이렇게 수근 거리는 언니들한테 말씀드렸다.
>
>“우리가 이랜드 투쟁 해 온 사람들이기에 이럴 수 있는 거예요. 이랜드 조합원들 아니었으면 이런 자리에 우리 노래하라고 불러주지 않았겠죠. 아직까지는 이랜드 투쟁 후광을 우리가 받고 있는 거지만 괜찮아요. 그 후광은 다 언니들이 노력한 결과니까. 다만 앞으로는 아니겠죠. 언니들! 실력 있는 다른 전문 가수들도 노래해서 이만큼도 못 받을 때도 많아요. 이번에는 우리들 후원하는 맘으로 소중하게 받아들이고요, 앞으론 돈 받을만한 ‘실력'을 키워서 공연하러 가요. 제가 누구에요, 매니저잖아요. 우리가 실력만 쌓으면 공연 섭외는 제가 알아서 할 게요. 불러주지 않아도, 찾아서 갈 공연도 많다니까요."
>
>굳이 내가 한 말이 아니었어도, ‘노래'로 ‘노동의 대가'를 받은 언니들은 저절로 그런 생각들이 움트는 중이었다. 더불어, 내 생각이긴 하지만, 대가 없이 그 동안 이랜드 투쟁에 연대해 온 많은 문화노동자들에 대해서도, 새삼스러운 고마움을 언니들은 느끼지 않았을까.
>
>새해부터는 한 달에 두 번 만나 노래연습을 하기로 지난 만남에서 마음을 모은 우리들. 그 땐, 두 번 다 나오지 못해도 괜찮으니까, 대신 한 번은 꼭 나와야 한다고 그렇게 이야기 했는데. 한 달에 휴무 두 번을 노래연습에 쓴다는 건 참 쉽지 않은 일이니까. 그런데 왠지, 두 번 노래연습에 언니들이 대부분 나올지도 모르겠다는 이 기대감. 괜한 욕심일까? *^^*
>
>처음엔, 될까 안 될까, 참 자신 없게 맞이했던 홈플러스 노래패 ‘비상' 첫 외부 공연. 이렇게 치르고 나니 얻은 게 너무나 많다. 그래서 삶에는 ‘도전'이 필요한가 보다. ‘실패'가 따를 수도 있지만, 또 어찌하느냐에 따라 이렇게 뜻밖에 값진 성공을 만날 수도 있으니 말이다.
>
>복귀 하자마자 이렇게 첫 외부 공연을 치룬 홈플러스 노래패 ‘비상'. 이제부터가 정말 시작이다. 그리고 조합원 아닌 처지에서 어쩔 수 없이 붙였던 이름 ‘비상 매니저'가 해야 할 몫도 이제부터가 정말 시작이다.
>
>정말 많이 모자랐지만, 우리들 존재만으로도 기쁘게 우리 공연을 받아주었던 이랜드 문화제를 넘어, 새로운 공연들을 맞이하기 위한 노래 연습은, 전보다 분명 어려울 것이다. 연습할 노래 고르는 일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
>하지만 조금은 어려울 수 있는 그 길, 난 기쁘게 받아들일 테다. 어찌 해야 할지, 어찌 걸어가야 할지, 그저 조합원 언니들이랑 노래를 사랑하는 마음 하나만 갖고 막막한 중에 시작했던 이랜드일반노동조합 월드컵분회 노래패 ‘비상'. ‘홈플러스 노래패'로 막 거듭나고 있는 지금, 적어도 ‘길'은 보이니까. 없던 길도 만들어나간 비상이었는데, 길이 보이는 지금 무엇이 두렵겠는가.
>
>엊그제 콜트/콜텍 노동자들을 후원하는 콘서트에서 한 콜텍 조합원이 했던 말, 이번엔 내가 해보고 싶어진다.
>
>“비상 준비하면서, 만들어가면서 참 많이 힘들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전 이제 달리기만 하면 돼요. 왜냐고요? 우리들 ‘실력' 차근차근 키워내 줄 든든한 노래 선생님도 있고. 무엇보다 제 옆엔 이렇게 든든한 비상 언니들이 있으니까요. 언니들이랑 노래까지 같이 할 수 있는 이런 매니저로 걸어갈 수 있어서 참 행복해요.*^^*"  

조혜원 2008-12-15 07:59

매니저는, 어쩔 수 없이 붙인 이름인 걸요. 조합원도 아닌 제가 '비상'과 함께 하려고 보니. ^^ 제 가장 큰 바램은 '비상'이 매니저 없어도 잘 굴러갈 수 있게 되는 거랍니다. 저 없어도 알아서 노래 고르고, 연습하고, 공연 준비도 하고. 그래서 제가 아무리 가고싶어도, 언니들이 불러줘야만 갈 수 있는, '비상 객원 가수'가 되는 게 제 꿈입니다. 가다보면 그런 때가 오긴 올 테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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