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서 내려와 보지못한 얼굴도 보고 이런저런 고민들과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던 중 지금의 팀장 태수로 부터 일본공연에 함께 가자는 제안을 받았다
1,2월간 귀옥이와 영애의 노래지도를 부탁받고 하던터였다
반격콘서트이후 민중가요와 꽃다지의 전망을 고민하고 공부하러 간다고 대책?없이 산으로 들어간 후 가창에 대해서는 책임을 들을 수 밖에 없었다.
어찌 되었건 논의 끝에 혜윤이도 같이 가자고 제안하고 급하게 일본공연을 준비 할수 밖에 없었다 .

왜가는데?
4박5일의 일정중 3일의 공연 .
징용,징병으로 강제연행되어 일본으로가 죽었거나 지금까지 법정 싸움을 벌이고 계신 분들의 재판 판결이 마지막날에 있는데 그분들과 그분들의 가족, 함께 싸워주고 계시는 일본분들과 우리동포들 그리고 조선대학교 학생들, 일본의 꽃사람들 등등 을 관객으로 한 공연이 첫날과 마지막날 공연이고

둘째날은 이미 민영화 되었지만 지금까지도 싸우고 있는 해고되신 국철노동자들을 투쟁다큐상영과 지지공연이었다.

그리고 반격과 손을 잡아야 해를 꼭 넣어달라는 오자와 아줌마의 부탁이 있었다

자 준비해보자
일본에 두번째  갔을때(96년인가싶다)그러니까 꽃다지 식구가(연주팀 기획실) 스무명이 넘어갈때 였다 ..
베이스주자였던 필우와 며칠을 밤새워 만들었던 '백만인의 한'이라는 노래를 중심에 잡아놓고 자료와 악보를 뒤지기 시작하였다 .
일년전 꽃다지에서 나올때 자료를 챙긴다는 것이 어찌된게 사무실에도 악보한장없고 집에서도 박스채 연출안과 편곡악보집이 안나왔다.(오랫동안 비워서).
이럴때 등장하는 은진언니의 구원의 목소리.
아마 공연 녹음 테이프가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기다렸다 .나왔다. 아리랑 노래를 삽입한 11분정도의 대곡!!
됐다.
근 일주일을 잠을 못 자고 악보로 따고, 길다고 해서 줄이고, 편곡맡기고, 검토하고, 시간은 빨리도 흐른다...
참 영상도 해보자.
정연언니가 아픈것도 잊은 채  뛰어준 덕분에(정신대 할머니가 모여사는 멀리까지 다녀옴,포천인가? 할머니들의 그림까지 슬라이드로 준비됨)준비완료!!
역시 믿을만한 사람이다.한다면한다

떠나기 전날 상현형과 멤버들 불러 오징어회 먹다가...하여간 비몽사몽 출발!!
잠시후 깨보니 나리타공항..낯익은 얼굴들이 보인다..왔구나

공연장 보러갈까 했으나 숙소에서 거리가 가깝고 해서 일정상 숙소로 가 짐을풀었다.개인적으로 난 짐도 없다.
갈때마다  이것저것 가지고 갔다가 풀지도 않고 온것이 많아서 간추린다는 것이 칫솔도 안가지고 가게 됬다.참 여러사람것을 주인도 모른 채 그냥 썼다..
그렇지뭐!!

일본공연 가기 전에 세네번 공연을 서면서 호흡을 맞추긴 했지만 그래도 긴장이 되어 잠이 잘 오지않았다.설쳤다.
첫날 공연이 막 시작할 무렵 이었다.
공연전이라 긴장속에서  이것저것 동선과 멘트를 챙기고 있었다.혜윤이가 잠시 나가나 싶었다. 그런데 갑자기 대기실 바깥복도에서 비명이 자지러 졌다.
급하게 뛰어나갔다
'좋아좋아'였다.('좋아좋아'는 꽃다지가 붙여준 애칭이다재일동포3세로
조선인임을을 뒤늦게 인정하면서 조선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어여쁜 처녀이다.저번에 왔을 때 한국말을 늦게배워 잘 못해서 술이 취하자 계속 좋아좋아와 원샷을  연발해 꽃다지 식구들과 기상이를 망가뜨린 장본인이다.우린 돌아와서도 좋아좋아 얘기가 그치지 않았다)
얼굴은 빨갛게 상기되어 뛰어왔는 지  땀을 흘리고 있었고 눈에는 눈물이 흘러나오고 거의 복도에 실신상태로 서있었다.우리를 보려고 온것이다.
한사람 한사람 우리식구들  얼굴을 확인할 때마다  주저앉아 버릴듯 비명을 지르며 울고있었다.나도 순간 가슴이 탁 막히고 눈에 뜨거눈 물이 고였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그모습이 너무 이쁘고 너무 애처러워서 진심으로 안아주었다.
남한땅에는 올수없는 그애가 조선땅 냄새를 맡고 싶어서 조선사람이 그리워 찾아온 것이다

사람들이 좋아좋아를 진정시키고  우리도 공연을 해야하기에 마음을 가다듬고 공연을 시작하였다.

내 앞쪽으로 나이가 꽤 드신 분들이 앉아계셨다..아마도 그분들이셨다.
생존자..
처음엔 왠지 눈으로 쳐다 볼 수가 없었다.왠지 송구하기도 하고 ...
살아있는 동상같기도 하고 ...살아있는 역사가 눈앞에 있다
공연을 시작하고도 내내 눈을 못맞추고 있었다.
드디어 백만인의 한을 부르는 데 내앞쪽에서 무슨 움직임이 있었다 ..
(백만인의 한은 마지막에 아리랑노래로 마무리 된다)
작은 체구의 할아버지 한분이 아주 작은 움직임으로 팔을 서서히 들고 한계단한계단 걸어 나오시고 있었다 .
아주 조금씩..
내앞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아리랑 간주에 맞추어 어깨춤을 추시면서 아무시선도 의식하지 않고 눈은 지긋이 감고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그저 혼자 춤사위를 느끼고 계셨다.
난 그분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그렇게 시간이 흘렀을까 ..
이제 아리랑 노래를 불러야 하는데 ..불러야 하는데...
.모니터에서 내목소리는 이미 노래가 아니었다.흐느끼고 있었다.
그춤에 맞추어 노래를 불렀어야 했는데....계속할수가 없었다.
그냥 마이크를 입에 댄 채..그노래는 끝나고 말았다. 눈앞이 어릿했다.진정하고나니 여기저기서 눈물을 훔치는 모습이 보였다
지금도 그 춤사위를 생각하면 가슴이 저리다..잊지못한다..

첫날부터 교류회는 만남과 곧 있을 이별을 동시에 안은채 뜨겁게 치뤄졌다.
난 역시 의자위로 올라가 서울에서 평양까지를 부르고 그냥 얼싸안고 ...

이틀째 허리에 무리가 왔다. 멤버들이 걱정할까봐 말을 안하다가 어어 점점더  이상하다 ..소리를 낼수가 없다..날씨도 어제부터 안좋더니 비오고 너무 걷고 해서인가 몸살까지 겹쳤다(이감기가 거의 이주동안이나 갔다)
일단 양호실에 올라가 파스를 등에 허리에 덕지덕지 붙이고 누웠다.열은 열대로 나고 ..
일본약은 약해서 우리나라 약처럼 효과를 못본다(좋은건지 나쁜건지)
몇시간이나 지났을까 ..공연 한시간반전 잠이 깼다.일어났다. 땀을 흘려서 인가 가뿐하다..기운은 없지만
자상하신 통역자 가토아줌마가 빵과 쥬스를 사가지고 오셨다..
다시 목풀고 공연은 무사히 마쳤다.사실 용썼다..개인적으론..

사실 일본과의 역사적인 문제를 자신들의 문제처럼 생각해주는 일본의 여러분들이 너무 고맙고 존경스럽다 .우리안에서도 그렇지 못하는데 말이다.
외국인노동자 문제도 그렇고 ..

세째날은 일본의 대기업 토시바앞에서 집회가 있었다.
산재를 당한 한국노동자의 보상문제로 가나가와 시티 유니언노조에서 외국인노동자들과 함께 액션(일본에서는 간단한 시위를 이렇게 부른다)을 벌인것이다.

시위중간에 각나라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나와 자국의 노래를 불렀다..우린 바위처럼을 불렀다.우리보고 가수같다며 나중에 한국 노동자가 부른 노래가 우리에겐 압권이었다.하하 그노래는 서울의 찬가였다.뭐라해야 할지...

저녁에 공연을 보시고는 좋은 노래 많이 불러 달라시던 한국인 외국인 노동자아저씨 ..돈벌었으니 곧 한국에 오신단다..우리나라보다 외국인노동자의 상황이 그래도 나은것 같다..
우린 참 '우리'라는 '나'만을 보고있는건 아닌지 싶은 생각도 들고 ......얼마전 텔레비젼에서 한국이 지옥같다던 팔짤린 외국인 노동자의 일그러진 얼굴이 기억난다.

그리고 일본법정에서의 숨막혔던 몇초는 아직도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는걸 내눈앞에 증명해 보였다.할아버지들의  분노.
뒤도 안돌아보고 나가는 판사들과 일본말로 호통치시는 할아버지들 ..같은 일본사람으로서 창피하다며 이유라도 설명해 달라시던 그모습이 참 대조적이다...

그리고 지금 한국 땅에는 일본뿐만이 아닌 자본과 미제와 권력따먹기와 불평등과 납득할 수 없는 이유모를  배신과의 싸움이 한창이다


참 4박5일동안 우리주위엔 일본의 3세 젊은이가 항상 붙어있었다 .우리보다 더 조선인다운 .
박성일이다.
'오라'음반에 민들레 씨앗은 우리가슴에라는 노래를 만든 친구다
아예 아르바이트 일주일 쉬고 ..내내 같이 생활했다.
그 친구얼굴을 보면 그냥 웃고 싶고 울고싶어도 진다.한참 동생이지만 얼마나 듬직한지.일본의 로드매니져 역할을 충분이 해냈다.

그리고 꽃다지의 노래가  일본에 있게 한 여러분들 너무 감사드린다.
상록수의 이미지를 그분들에게서도 본다...치열한 삶들도..(벌써보고싶어요).
꽃다지노래가  있어 작은 그릇의 내가 커다란 것들을 느낄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것 새삼느끼게 된다.음악으로 잘 옮겨야 하는데....

또래 통역자인 이시가와(산재 전문의사임) 술 먹더니 자료번역 안 해주고 해서 애먹이고..하하 그날밤은 정말..때려주고 싶었다.고마웠어 그래도...
목쉬었다고 마지막날 공연 못하겠다고 좌절했던 귀옥이도 잘해냈고...
(한번 실종되었었음,떼놓고 올뻔했지)
이리저리 챙기느라 수고한 태수..언제나 고맙고..
묵묵히 중간다리 역할하는 성일이 진지해서 얘기통하고..
'민들레 처럼' 반주를 잘못가져와 마음고생한 인섭이. ..
쉬는 와중에 불려나온 혜윤이 팀웍 맞추느라 애썼고..
조미료는 내가 챙기겠다며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은 우리 정연언니 ..말이라도 고맙고..빨리 건강해지기만 바라고..건강해져서 일 좀 저지르자..
모두 수고 많았네 생각해보니...
참 꽃다지보다 동포들을 더많이 만난 지범이.한국인 가이드처럼 오버하던 모습 선하고..꽃다지 기자로서 한몫 단단히 했고..고마워
마지막으로 조용히 이것저것 체크해준 미영언니 정말 고마웠어..역시 선배야..

그리고
잘 다녀 왔습니다..여러분..
다 옮길수는 없어서 아쉽네요...언젠가 여러분과도 만날날 있겠죠?
봄날에....
* 관리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10-02-06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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